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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방/오늘의 밤

불안을 건너는 법 2016.1.13

# The best way to predict to future is to invent it.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일을 시작하고 일기를 쓴 줄은 까맣게 있고 있었다. 그동안 몇 줄 써놓은 문장 중엔 가슴에 닿는 말도 어쭙잖지만 몇 개가 있다. 어쩄거나 몸과 마음이 편할 때의 기억은 처절하고 잔혹한 시절의 기억보다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6개월의 이야기가 끝날 수도, 이어질 수도 있는 지점에 서 있다. 사실 이 지점이 내 인생에 썩 큰 일은 아닌데, 이런 사실을 나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려 깨닫는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독서실에 쳐박혀 자격증 시험이나 기웃거릴 미래를 떠올렸는데 지금은 내가 어떤 곳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됐다. 이거야 말로 내겐 꽤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는 자꾸 변하는데 회사는 답을 주지 않는다. 국가 역시 답을 모른다. 그리고 이들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미래보단 현재에 훨씬 관심이 많다. 미래를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배들은 회사 입사보단 1인 기업을 차리라는 조언도 해주신다. 여전히 막막한 얘기긴하다. 밀고 나가고 싶은 분야가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걸 뒷받침할 기술도 배운 바가 아직 없고, 더 알고 깨우쳐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생각해보니 나도 내 미래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가 내 삶의 분기점이 결코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나는 매일 같이 골대 앞에 섰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잔뜩 주눅이든 과거와 낙관은 불투명하고 비관만 선명한 미래가 발목을 잡아도, 나는 매일 골대 앞에 섰다. 그러다 찾아온 6개월의 필드 생활 동안 나는 별로 기죽지 않고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마음이 크게 들뜨지도 않았고, 머리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게 점차 미래는 연속되는 시간 속에 어슴푸레 머무는 것이 됐다.


골대 앞에 선다는 게 그렇다고 뭐 그렇게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말하듯 그저 나빠지지 않게 혹은 너무 미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저녁을 후회하기도 했고,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미래를 내쫓기 위해 산을 오르기도 했다. 물론 그중 몇 개월 동안은 비관적인 미래에 너무나 현혹돼 중심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열심히 만들어 왔다고 자부하는 내 어떤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현실을 정직하게 사는 것이 전부다. 지금 나는 이게 떳떳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식 능력주의 신화에선 과거에 쌓은 노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미래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는 게 그 절반이다. 그렇게 맑은 눈으로 오늘 하루의 할 일들을 고민하고 이에 꼭 맞는 노력을 한 삶이 자부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예술이란 과거가 현재를 강화하고, 미래가 현재를 고무하는 계기를 아주 치열하게 경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빌려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내게 있어 가장 좋은 미래란 무언가 예견하는 보장하는 것이 아닌 현재를 고무하는 데만 충실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실을 직업도, 직장도, 그 무엇도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이 시간 깨달았다는 것이 나는 나의 청춘에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