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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방/오늘의 밤

불안을 건너는 법 (6) - 용기와 무지

삶이 돌아가는 이치에 1+1은 없다.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게된다. 양자택일을 할 땐 A와 B 중에서 어떤 것을 얻는 게 좋을지 생각하기보단 A와 B 중에 무엇을 버릴 건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태 나는 무엇을 버리며 살았나.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던 중학교 때까진 이렇다 할 선택지가 없었으니 패스. 고등학교 땐 학창시절에 한 두 번씩은 있을 법한 학창시절의 추억을 버렸고, 대학에 올라와선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 걸 포기하고 사랑을 해주느라 힘들었던 것 같다. 전공도 포기했고, 기자질 한 번 해보겠다고 Plan B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어 작년 한 해 동안 적잖이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 연애, 한량짓, 몸매 관리를 위해 술을 포기했다.


내가 쓴 일기 중 내가 봐도 인상적인 구절 하나가 있다. 나는 이제 고속도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곳곳에 추억이 있는 오솔길을 걷고 싶다. 요즘 고속도로 달리기와 오솔길 걷기 중 어떤 것을 걷는 게 이득일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둘 중에 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오늘 생각이 좀 달라졌다. 만약 내가 안정과 꿈을 동시에 챙기려 허덕였다면 분명 나는 지금 여기 서있지 못했을 것이다. 학창시절엔 분명한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애들을 위해 나를 좋아할 이유를 만들어주려 애먹었을 것이고 헤어지지 않는 연애,사랑받는 연애를 위해 사랑주는 것에 나를 투신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그 연애의 마지막에 서서 무엇인가를 후회했었겠지. 전공, 글쎄 어쨌든 나는 내 뒤바뀐 전공으로 인해 대학 시절 열심히 학교 공부를 했던 추억을 남겼다. Plan B가 너무나 확실히 있었다면 아마 나는 기자질을 작년에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것을 위해 안정감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아마 얻지 못할 것이다.


어제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뽕짝이 아닌 팝송을 거리에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꽤 감동을 받았던 일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저 할아버지는 노력을 안 해서 저 자리에서 노래나 부르고 앉아있는 건가. 도와주지 말아야겠다. 아, 나도 이런 말들에 세뇌당했다. 아마 외국 여행을 가서 만났던 풍경이라면 나는 속으로 '여기는 이런 낭만이 아직도 있구나'하고 별 생각 없이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 내겐 사회에 대한 적당한 무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용기내고자 하는 일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내가 몰랐던 진짜 세상 속으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 그리고 꼭 그 자리엔 이런 교훈이 자리하기를 희망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낭만적이고 꽤 따뜻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