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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방/오늘의 밤

불안을 건너는 법 (5) - 체험

오늘은 꽤 색다른 체험을 했다. 저번 주에 쓴 기사가 거의 우라까이식이라 매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출근하는 내내 생각했다. 기사에 경험을 넣자, 체험을 넣자, 현실을 넣자. 여러가지 정리해야할 것들이 많아 출근하자마자 쓰진 못했고 오후께야 겨우 써둔 기사를 꺼내 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질문거리를 리스트업한 다음 취재원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다. 역시 나는 이공계 교수님들을 사랑한다. 그 시크함 속에 묻어나는 자상함. 내 졸업 논문을 봐주시던 학부 교수님을 만나고온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일필휘지를 자주 한다. 하지만 일필휘지를 했을 때마다 나는 목말랐다. 시간을 재고 글을 쓰는 것은 지난 몇 년간 해온 일이라 사실 나에게 그다지 무리는 아니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글에 쓸만한 몇 가지 자료들을 추린 다음 순서를 배열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 중간 중간 글을 섬세하게 할 몇 가지 표현들을 구상하며 글을 쓰는 것. 이렇게 하면 별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대충 읽을 만한 글 한 편이 뚝딱 써진다. 하지만 나는 이게 갑자기 너무 재미 없어졌다. 그래서 잠깐 기자라는 일에서 외도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실제를 체험해보니 별 거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뇌가 굳는 것 같은 최악의 기분까지 경험한 터다.


하지만 취재, 확인, 퇴고와 퇴고를 거듭해서 몇 시간을 공들여 기사 하나를 오늘 마침내 써냈다. 그리고 나는 무척 흡족해 했다. 기사의 퀄리티를 떠나서 취재원의 생생한 목소리와 기존의 기사에서 보기 힘들었던 심화 자료들이 덧붙여지니 우라까이 기사와는 다른 그럴 듯한 콘텐츠를 가진 기사가 나왔다. 이걸 보며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기자의 자부심은 많은 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의 진짜 자부심은 알아내야 할 어떤 지식, 사건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베짱과 자신감에서 나온다. 기자라는 일을 체험하기 전엔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기자라는 일에 대해 묘한 환상, 깨지기 쉬운 환상 같은 걸 가지고 살았던 것 같은데 나는 오늘 이 일의 참맛을 본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고, 나를 떠올리면 생각날 수밖에 없는 고유한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 꿈이다. 요즘 한창 그 분야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도 많이 하고 빅데이터나 데이터 시각화 같은 다른 기술을 배워볼까 같은 생각도 많이 헀는데 아직 나는 그걸 결정하긴 밑천이 없는 듯하다. 오늘 느꼈던 마음가짐을 발단으로 여러가지 지식과 경험들을 버닝하다보면 언젠가 하나가 나오리라 하는 느긋한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진로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땐 역시 현장 속에 한 번 뛰어들어보는 것밖엔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