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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방/오늘의 밤

불안을 건너는 법 (4) - 기록의 수단

흘러가는 시간, 쏜 살 같이 지나가는 젊음이 아까운 것은 나이 들어감이 다분하게 보이는 내 얼굴이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 때문이 내겐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평생 쓰는(write) 인간으로 살아갈 요량이고, 그 주제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그리고 기록할 것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반복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그 속에 섞여 있는 이따금의 나를 발견할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불안을 매일 같이 적어 내리곤 했다. 그때 생각하기론 내 일상을 참으로 치열하게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춰보면 오춘기를 맞은 백수의 귀여운 일기 정도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는데 그 많은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불안하다. 그래서 힘들다."가 끝이다. 그때는 기계처럼 불안을 반복해서 겪었고 기계처럼 반복해서 힘들어 했다. 변곡점을 찾지 못한 나날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좋은 기록이란 어쨌거나 신선한 기록, 접해보지 못했던 기록, 그래서 재밌는 기록일 텐데 그런 기록이 나오기 위해선 나는 매일 매일 색다른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나는 그것의 대부분을 책에서 얻은 지식들로 채워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에도 나름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자주한다. 책을 읽되, 그것이 나의 무지를 부끄러워하며 이것을 털어버리기 위해 반복하는 강박적 행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것, 지금까지 공부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흥미'에 이끌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강박에 젖어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것도 강박적인 행위가 된다. 보편성을 찾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에 이끌려 책을 읽으면 정보가 분류가 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과 새로 투입된 지식들을 열거하고 이를 카테고리화할, 그런 고도의 정신 작용을 소화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글 역시 이런 논리정연한 체계에 이끌려 쓰게 된다. 흥미가 읽기와 쓰기에 수단에 될 때 기록은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엔 어느정도 해탈의 경지가 필요하다. 균형, 완성, 여유, 정돈 등. 듣기 좋은 단어를 열거해서 해야하는 활동이 글쓰기란 사실 덕에 나는 그토록 글이란 것에 끌렸고, 그것에 목말라했는지 모른다. 저런 사람, 참 멋있으니까. 이렇게 놓고보면 글쓰기란 불안과는 정 반대의 메커니즘을 따르는 듯하다. 물론 불안이란 감정이 어떤 정서와 행위를 촉발하면서 기록에 좋은 소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불안을 벗어날 길 없이 그것에 빠져지내는 것은 좋은 글을 쓰는 일엔 독이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서 벗어날 길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직접적인 행동이면 더욱 좋다. 말은 쉬워도 그게 참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