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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방/오늘의 밤

불안을 건너는 법 (2) - 효

효라는 것이 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개인적으론 이 단어에 대해 반감은 없다. 나는 내 부모에게 어쨌든 성심껏 효를 다하고 싶다. 요즘도 나는 내 부모를 존경하는 사람 명단에 자주 놓곤 한다. 구구절절한 과거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나는 내 부모에게서 삶의 방식을 분명하게 배웠다. 개척하고 투쟁하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 산다는 게 헛구역질 나게 힘들어도 그냥 좀 참을 것. 내 부모님은 고난을 이렇게 극복하셨고, 나는 이게 내가 아갈 길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리고 그걸 진짜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타인을 동경한다.


효라는 것도 특권처럼 느껴지는 사건들이 요즘 자주 벌어진다. 국회의원이건 경제부총리건 누구건 힘 있는 사람이라면 힘을 써서 자식들 취업시켜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더라. 취업난과 겹쳐 화제가 커졌을 뿐 전부터 적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부모는 자식 대학 등록금도, 서울에 집 한 채도 제대로 못 내준 것에도 미안함을 느낀다던데 이젠 자식 취업시키는 일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런 이들이 자식들에게 효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 태어나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자식 세대도 많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시골에서부터 상경해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랬다. 꽤 많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여유로움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며 힘들어 하곤 했다.


하지만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 직업을 물려주는 게 과연 우리 시대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인가에 대해선 조금 의문이다. 요즘 나는 자주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엔 잘 사는 것이 경제적 여유로움의 동의어였다면 지금은 정신적 여유로움의 진정한 잘 산다의 정의라고 생각하며 산다. 정신적 여유라는 게 무슨 주말마다 브런치 카페에 앉아 힐링 타임을 갖자는 게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같이 흐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정보력과 판단력이 빠른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급변하는 세상에서 조금 앞서 여유 있게 삶을 관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잘 사는 사람의 삶이라 생각한다.


경제적 여유로움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시대를 읽지 못하면 파산할 수도 있단 얘기다. 그리고 권력의 생래적인 속성이 그러하듯 권력은 더 큰 권력에게 언제나 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 힘으론 아무것도 통제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는 게 더 큰 곤욕이라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시대를 훑는 감각을 잃지 않고,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에게 항상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바닥을 친 후 아주 천천히, 천천히 상승 곡선을 그리며 올라왔던 부모님의 일생과 분투를 기억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내게 효는 꽤 좋은 어감의 단어다. 앞선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나는 이를 무기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