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제. 어제, 오늘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말이다. 집에서나 밖 어디에서나 기운 없어보인다, 에너지가 없어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렇게 신경쓰진 않았다. '내가 어떻게 사는 지 알면 기운 없는 게 당연해보일 걸'이라고 속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선배의 말은 일리가 있다. 에너지가 이론으로만 쏠려 있고 그것에만 집중하려하니 독자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 대해 가지는 약간의 두려움, 냉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과신은 그간 나를 이론 중독자로 만들었다. 지지난달 언젠가 내가 '나는 누군갈 논리로 제압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나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잠을 못 이뤘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 생활, 관찰과 적용에 무딘 나다. 한 마디로 구성과 조직, 분석과 정리에는 탁월해도 임기응변이 부족해 사고가 발생하면 '준비하지 못한 데이터다!'라는 생각에 소위 멘붕이 온단 소리다. 기자 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난 이걸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쟁이가 되려면 이런 작업은 '읽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오늘 아침 출근, 낮에 점심을 먹으며 동료들과 대화하며,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나는 계속 이 생각을 했다.
행정 비효율에 대해서도 자주 떠올렸다. 지금 데이터로 관광 아이템을 뽑아내는 공모전을 준비 중인데 우리나라 문화 사업 전반이 대충 이렇다. 잘 구분도 되지 않는 대동소이한 자료가 수십개의 사이트에 세세한 정리도 없이 그대로 업로드 돼 있고, 기자들이 썼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듯한 웹진들도 허다하다. '굳이 그런 사이트에 왜 들어갈까?'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차라리 검색 시스템이라도 제대로 갖춰 지역이면 지역, 예술 장르면 장르에 대해서 정확하게 구분된 자료를 통합해 만들던가. 독자가 왜 그런 정보를 찾는 지에 대한 구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정보를 만들고 제대로 분류하지도 않고 있다. 가장 어이 없던 것은 지역 출신의 예술가나 예술단체에 대해 올라온 구청 자료다. 구청 음악단, 구청 문화센터 딸랑 두 개 올라와 있는 데가 태반이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마을 협동조합이나 시민 예술 단체 관련 정보가 지도 위치 검색과 함께 올라왔다. 대학로에만 있는 줄 알았던 극단이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는 줄도 네이버 보고 알았다. 아카이브라는 것이 최근에 뜬 개념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하루 빨리 키워드별 검색과 자료 열람이 가능한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면 한다.
부처 칸막이도 문제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일은 간단하다. 편집국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가느냐 오른쪽으로 가느냐. 디지털 부서의 직원들은 데스크 급을 제외하고 거의 계약직이다.물론 나도 포함이다. 풍문을 들어보니 전통부서 편집국 기자들만을 적통으로 보고 디지털부서는 경력에 계약직으로만 뽑으려고 한댄다. 뭐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3D프린터와 인공지능 덕에 하루에도 수십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면, 전통 기자가 발굴하지 못한 사건을 SNS의 시민이 발굴하는 시대라면 노동개혁 합의를 맞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로봇 기사를 쓰고 SNS에서 취재거리를 발견하는 기자를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통찰도 없이 하루아침에 로봇의 시대를 맞는 사람들은 그 사이 도대체 어디서 새 시대를 맞이할 경쟁력을 찾을까. 회사에서 한다는 미디어 포럼이란 것의 취지가 참 무색하다.
나는 대학 밖에서 순수예술을 하는 것에 회의감과 무력감을 가진 사람들을 숱하게 봤다. 하지만 대학 안에선 단 한 번도 예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 지금 관(官)은 혁신과 창조를 부르짖지만 그 안은 비효율과 시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가득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예술의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관 밖엔 예술의 개념과 쓸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대학과 산업 구조 탓에 가장 창의적인 일을 해왔지만 밥 벌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왜 우리나라엔 이렇게 한 치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많을까. 이 사회에서 지독한 불안을 건너려면 반드시 현실을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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