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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기사)

[한겨레]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상위 10개국 중 이른바 선진국은 독일밖에 없다. 유대인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해 1938년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미국 등 32개국이 참여했지만 자국에 할당된 수보다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는 개도국인 도미니카공화국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어릴 때 집안 어른들로부터 6·25 때 피난살이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다음달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역시 난민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가 아니던가.


공자, 모세, 마르크스, 달라이 라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니체, 쇼팽.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모두 난민이나 망명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난민 역사는 곧 인류 역사다. 자기 땅에서 살기 어려워 타지로 옮겨 다닌, 자의 반 타의 반 인구 이동의 역사가 호모사피엔스의 진화기 자체다. 터키 해변에 떠내려온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한 장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먹먹해진 것도 어쩌면 우리 인간의 무의식에 원형질처럼 새겨져 있는 유민(流民)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닌 난민 현상이 국제사회의 의제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 민족주의의 발흥 그리고 국민국가 체제의 보편화가 진행되면서 난민이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지난 백년 사이 국제사회에서 난민에 관해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하나는 제도화 경향. 국제연맹은 1921년 역사상 최초로 난민 최고대표실을 신설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으로 약 80만에서 1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레닌이 이들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므로 수많은 무국적자들이 유럽 각지를 떠돌게 된 것이 새로운 기구 창설의 동기가 되었다. 북극 탐험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이 초대 대표로 취임하여 무국적자들에게 국제 여행증명서, 이른바 ‘난센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45만명이 이 조처의 혜택을 받았다. 샤갈, 나보코프,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도 난센 여권을 품에 지니고 살았다. 그 뒤 여러 국제기구에서 난민을 다루다가 1951년 유엔에서 난민지위협약이 제정된 후 오늘날의 유엔 난민 최고대표실이 결성되었다.

또 하나는 ‘난민’ 개념의 확대다. 알다시피 난민협약에 나와 있는 난민 규정은 엄격하다. 자기 나라를 벗어나 있어야 하고, 박해를 받았으며,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를 받을 근거 있는 우려가 있고,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소속, 정치적 견해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 조건이 변하여 원래의 난민 개념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 이유로 삶의 터전을 (반)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이 내몰린 사람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자국 내에서 내전이나 기근으로 삶의 뿌리가 뽑혀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도 크게 늘었다. 요즘은 공식적 난민과 비공식적 난민을 뭉뚱그려 ‘강제 이재민’(Forcibly DisplacedPersons)이라고 부르곤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 표현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최근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에 의한 탄압 혹은 여성 생식기 절제를 피해 타국에 비호 신청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5960만명의 이재민이 있다. 이 중 약 3분의 1이 국제 이재민(공식적 난민 포함)이고, 나머지는 국내 이재민이다.

지난 3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했지만 최근 시리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요즘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 수용을 놓고 논란이 많지만 실제로는 국제 이재민 중 86% 이상이 개도국에 수용되어 있다. 터키, 파키스탄, 요르단, 레바논, 이란, 케냐, 차드, 중국 등이다. 이 중엔 자기들도 어려운 나라가 많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상위 10개국 중 이른바 선진국은 독일뿐이다. 선진국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나치에 의해 추방된 유대인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해 1938년 프랑스 에비앙에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때 미국을 위시해 32개국이 참여했지만 자국에 할당된 수보다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는 개도국인 도미니카공화국밖에 없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발생 원인을 알아야 한다. 국가간 전쟁과 내전이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한다. 국가 내부의 모순과 국제적 외부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군사비 지출이 높고 무기 거래가 활발할수록 난민이 늘어날 개연성이 커진다. 대인지뢰 매설 지역이 늘어나면 농경지가 줄면서 강제 이재민들이 급증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면 농업생산량이 당장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치도 있다. 빈곤 문제도 난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토지개혁이 안 되어 소농들의 삶이 팍팍한 나라, 국제 농산물 대기업들이 토지를 대거 매입한 나라, 정치적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식량과 의약품의 금수 조처를 당한 나라에서도 난민이 늘어난다. 인권침해가 심한 곳에서 난민이 증가하며, 정권이 바뀐 후 이전 정권 지지자들을 박해하는 나라에서도 난민이 발생하곤 한다. 민족, 종교, 정치적 이유로 소수집단을 박해하는 국가도 고위험군에 속한다. 세계 40%의 국가들이 5개 이상 민족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역시 주요 난민 발생국이다. 지난달 연재한 글에서 다룬 기후변화도 국제 이재민을 양산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말한 요인들이 사람을 자기 땅에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면, 인간을 다른 나라로 끌어당기는 힘도 있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야 하는 나라의 사람일수록 의식주와 안전, 고용 기회, 자녀들의 교육을 제공해줄 수 있는 호조건의 나라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한국에 오는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을 탐탁잖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만일 우리가 난민 송출국처럼 된다면 제발 와달라고 빌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니 우리한테까지 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제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닌가. 굳이 인도적 이유가 아니라 개명된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제적 인구 이동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난민들이 겪는 구체적인 인권침해가 많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을 보호해줄 국적국, 즉 자기 권리를 보호해줄 궁극적인 의무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권 보호의 주체가 자국에서 타국으로 이관된다는 점이 난민 인권 문제의 핵심이다. 자신과 주권재민의 사회계약 관계가 없는 타국 정부의 온정과 호의에 자신의 삶을 맡겨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한 난민이 되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 사회적 맥락이 사라져 버린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어엿한 인간이 최소한의 생명 보전에 급급해야 하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 유대인으로서 난민이 되어야 했던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은 냉소적 기록을 남겼다. “구출돼도 자존심이 상하고, 도움을 받아도 굴욕감을 느낀다.”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시리아는 세계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던 나라 중 하나였다. 오늘의 시리아 난민 중에는 과거에 타국 난민을 돕던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난민이 될 수 있는 존재다.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자국으로 강제송환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극히 중요한 난민 권리다. 또한 기본적 의식주를 제공받을 권리,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비합법적으로 입국하여 비호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는 처벌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여기에 더해 난민은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따지고 보면 난민은 많은 사람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원 1세기 어느 날 밤, 팔레스타인의 한 갓난아이가 권력자의 칼날을 피해 부모와 함께 이집트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 아이는 장성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우들에게도 굴이 있고 창공을 나는 새들도 둥지가 있건만 사람의 아들에게는 머리를 둘 데조차 없도다.” 예수라 불린 이 난민 출신 스승에게 신앙고백을 하는 크리스천이 오늘날 전세계에 25억명이나 있다. 작금의 난민 사태는 특히 그리스도교 신도들에게 인도적 실천을 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계기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어릴 때 집안 어른들로부터 6·25 때 피난살이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다음달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역시 난민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가 아니던가.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