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저널리즘의 출발은 ‘혁신’ 고리를 끊는 것”
지난 1월14일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는 <미디어오늘>과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주최하는 ‘혁신 저널리즘 컨퍼런스 : 뉴스를 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 컨퍼런스가 열렸다. 컨퍼런스는 최근 발간된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 교수의 ‘비욘드 뉴스 : 지혜의 저널리즘’이 던진 화두를 놓고 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혁신’과 ‘디지털 퍼스트’라는 키워드를 되새김질하고, 진정한 혁신을 위해 필요한 그간 고민했던 생각을 풀어놨다.
컨퍼런스는 미첼 스티븐슨 교수의 짧은 인터뷰 영상에 이어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 순서로 진행됐다. 첫 발표자로 나선 이정환 국장은 한국 언론의 현실과 현재의 ‘혁신 저널리즘’논의가 가지는 한계점을 짚었다.
혁신의 함정을 경계하라
이정환 국장은 “버리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라며, 언론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구조와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에서는 종이신문이 망하지 않는다. 문 닫은 신문사가 하나도 없다. 이정환 국장은 현재의 구조를 “공짜 콘텐츠에 광고를 끼워파는 형태”라고 평했다. 애초에 콘텐츠의 가치로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다. 이 지점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판단이다.
기자를 뽑아서 웬만한 정부부처와 기업에 출입시킨다. 정부와 기업은 출입하는 매체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광고를 준다. 심지어 광고하지 않고 돈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정환 국장은 이를 ‘보험성 광고와 협찬, 후원이 만드는 카르텔’이라고 설명했다. 이 카르텔이 엉망진창인 한국언론을 떠받치고 있다.
이정환 국장은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혁신 저널리즘’ 논의는 외형적인 부분에만 머물러있다고 본다. 카드뉴스, 동영상, 인터랙티브 뉴스, 데이터 저널리즘, VR 뉴스 같은 시도는 결국 실험일 뿐이며, 실험이 저널리즘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정환 국장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우리가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세부적인 실천방안도 몇 가지 제시했다.
- 뉴스의 유통기한을 늘려라 : 큐레이션 서비스, 기사의 재구조화,
- 핵심 검색어를 공략하라 : 뉴스 사이트에서 가치 있는 검색 결과를 제공
- 태그 2.0 : 태그를 중심으로 기사 묶음에 맥락을 제공
- 맥락 저널리즘 : 어떻게든 독자들이 뉴스를 따라잡을 수 있게
- 위키 스타일 뉴스 : 나무위키처럼 한 판에 모든 쟁점을 망라한 뉴스
집중된 전문지식을 갖춘 기자
‘비욘드 뉴스’의 역자이기도 한 김익혁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은 ‘비욘드 뉴스’의 내용을 인용하며 발표를 풀어갔다. 에르네스트 메소니에는 한때 파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화가였다. 그는 철저한 관찰로 정확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들라크루아는 “메소니에는 우리 시대 최고 거장이다. 메소니에는 틀림없이 우리 중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술의 발달은 화가 경쟁력의 기준을 바꿔버렸다. 당연하지만 메소니에의 사실 재현 능력은 사진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메소니에가 죽은 뒤에는 19세기 프랑스 미술사를 다룬 책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으며,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그의 조각상도 철거됐다.
지혜의 저널리즘은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은 저널리즘엔 위기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했는지가 중심이 되는 사실 중심의 뉴스는 경쟁력이 없다. 지혜의 저널리즘은 단순 사실 전달을 넘어 분석과 해석을 제공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강화해주는 저널리즘이다.
김익현 소장은 “한국의 기자들은 보도자료 처리, 기자 간담회, 발생 사건 따라가기로 바쁘다”라며 “메소니에의 그림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여태까지 한국의 기자들은 현실을 정확히 기술하는 것에만 치중했다는 의미다.
김익현 소장은 한국에서 저널리즘 혁신이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나 ‘스노우폴’에 집중된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김익현 소장은 “마치 반에서 중간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학생에게 서울대 수석의 공부 방법을 전해준 꼴”이라며 “아직 한국에서는 언론의 ‘콘텐츠가 좋다’는 가정조차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김익현 소장은 “기자는 전달자에서 전문가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시한 개념이 ‘집중된 전문지식’이다. 김익현 소장은 IT 매체에서 국제 뉴스를 담당하면서 삼성-애플 간 특허소송만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다른 기자들이 삼성-애플의 특허소송을 승패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며 단순한 보도를 낼 때,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어떤 특허가 쟁점 논쟁인지, 특허 침해가 맞는지 등등 이 사건을 둘러싼 분쟁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김익현 소장은 “전문성을 단순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한두 놈만 파자”라고 강조했다.
플랫폼의 본질을 생각하자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번역한 입장에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라며 유쾌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콘텐츠와 플랫폼의 관계에 초점을 두며 콘텐츠가 어떻게 플랫폼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영신 연구원은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츠 전략이 다르고,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플랫폼 전략이 다르다”라며 결국 각자의 목적에 맞는 계산이 깔렸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이 인스턴트 아티클을 내놓으면서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이 뉴스 콘텐츠를 끌어당기고, 광고를 끌어모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뉴스 알림 앱 ‘노티파이’가 등장했다. 사용자가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않아도 뉴스 알림을 받아볼 수 있도록 돕는 앱이다. 인스턴트 아티클을 둘러싼 해석이 무색해졌다.조영신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이 무엇을 하는 서비스인지 다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고 본질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모이자 페이스북에서 호객행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언론사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하고 뉴스를 유통하고 있다. 이렇게 콘텐츠가 많아지면, 페이스북이 변질할 수 있다. 본디 페이스북은 내 친구의 소식을 듣고 싶은 공간이었는데, 이물질이 들어오는 셈이다.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정보가 쏟아지는 공간이 되면 원래의 목적과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페이스북은 이물질을 통제해야 한다.
조영신 연구원은 “쏟아지는 뉴스 콘텐츠를 통제하기 위한 페이스북의 방법이 ‘인스턴트 아티클’이다”라고 분석했다. 유통권력을 페이스북이 쥐고 있기 위한 장치라는 의미다. 조영신 연구원은 페이스북 외에도 구글과 애플 뉴스의 예를 들며 ‘짝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정리했다. 어쩔 수 없이 플랫폼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조영신 연구원은 “플랫폼 사업자의 의도를 계산하고, 언제든 플랫폼이 언론을 버릴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조직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은 기존의 ‘혁신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가 기술에 치중된 것을 비판했다. 심석태 부장은 “일부 혁신 전도사들은 기자가 저작도구나 편집도구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라며, “하지만 기자들이 그런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고, 익힐 수 있으면 왜 기자를 하겠나”라고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언론계 전체를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심석태 부장은 “현재의 혁신 저널리즘 논의에 걸맞은 혁신을 진행하고 있는 언론사는 별로 없다”라며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확고한 사례가 부재한다”라고 꼬집었다. 앞선 발표자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술보다는 저널리즘 자체의 혁신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왜 카드뉴스와 같은 피상적인 시도만 이뤄지고 있는 걸까? 심석태 부장은 아직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 언론에서 원인을 찾는다. 여전히 ‘독자가 언론의 살길’이라는 생각을 못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심석태 부장은 몇 명의 실험조직이 단발적인 실험으로 상 받고, 기사에 실려서 칭찬받는 식은 ‘혁신’은 언론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심석태 부장은 “회사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조직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악순환의 고리 끊기
한국 언론의 디지털 혁신은 악순환의 구조에서 맴돌고 있다. 언론은 기존의 수익모델을 포기하지 못한다. 하던 대로 기자를 출입시키고, 광고를 따고, 온라인에서는 트래픽이라는 목줄에 묶여 있다. 결국, 디지털 혁신은 그저 실험차원에서 진행되거나, 인턴·계약직을 짜내는 콘텐츠 생산 수준에 멈춰 있다. 디지털이 돈이 안 되니까, 언론은 하던 대로 일을 계속한다.
‘혁신 저널리즘’은 이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언론사의 사정에 따라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끊어내야 한다. 어뷰징을 전면 중단하고 깨끗한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될 수도 있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지속할 수 있고 전달력도 높일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이 될 수도 있다. 디자인·개발·영상 인력을 기자와 동등하게 채용하기 시작하는 것도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조직을 전면 개편하는 경영진이 결단도 가장 가능성 큰 방안 중 하나다. 저널리즘의 혁신은 이 고리를 어떻게 끊어내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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