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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기사)

[디지털인문학] 피케티와 기술자본주의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21세기의 자본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아직 약관의 나이인 40대. 그럼에도 그는 정의로운 경제를 향한 거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한 학문적 성과를 내어 놓았다. 그런 그는 한편으로 고백한다. 그가 한때 미국에서 살았던 교수로서의 삶은 단지 성과급을 더 받기 위한 논문생산기계였을 뿐이라고. 그는 이러한 미국 교수로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귀국하여 프랑스의 자유로운 학풍에서 진정한 경제학자로 거듭났다. 그럼으로써 그는 삶, 일, 그리고 자신이 추구해야할 삶의 가치의 조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삶의 결과인 피케티의 저서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서 그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특히 삶과 일 그리고 기술의 관계에서 더 천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피케티의 책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수익증가율 차이에 따른 불평등만이 거론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어떤 기술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다. 사실 경제는 기술과 긴밀한 관계 속에 있으며 기술은 또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현재는 기술과 자본이 밀착되어 경제를 추동해나가는 기술자본주의 시대이다. 그리고 이때의 기술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지능적 첨단 기술로서 인간보다 더 정확한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식으로 기술자본주의가 발전한다면, 일하는 극소수와 일을 잃은 대다수로 양극화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일이 없는 자들은 물론 자본주의에서 빈곤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적 빈곤이 곧 사회의 위기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피케티처럼 미국에서 교수의 봉급이 더 많아도 그 일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나게 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일이 없는 자들에게 경제적 궁핍보다 더 심각한 사태는 그들이 미래가 없는 권태상태에 빠져 결국 중독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독은 미래라는 시간과 관계가 절연된 상황, 즉 절망적 상황에서 생겨난다. 미래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 있는 인간은 현재의 시간이 미래로 흐르지 않는 권태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시간을 죽이는 수단을 찾게 되는데 이는 술, 마약, 도박 등이 있고 최근에는 이러한 것들을 디지털화한 게임 등이 있다. 중독은 그것 때문에 사회적 관계가 망가지고 개인이 인격적으로 황폐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다. 이러한 치명적인 병에 대다수의 사람이 감염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같은 맹목적 기술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아무리 효율성과 정확성이 높은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일을 박탈하는 기술이라면, 결국 사회를 붕괴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현명한 미래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지배적인 미래학과 미래비전의 배후에는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기술지상주의적 미래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거듭제곱의 속도로 발전하는 첨단기술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성능이 증강된 인간 이후의 존재자의 출현을 시도한다.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즘은 구글의 기술담당 임원 레이커즈와일,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창업주 빌 조이(Bill Joy), 영향력 있는 정치가들이 참여하는 방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전세계 미래학 연구와 각국 정부의 미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즘이 미래를 장악한다면 그 미래는 중독사회를 향한 붕괴라는 역설에 빠질 것이다. 

인간의 일, 그것은 자신의 삶을 몸으로 살아나가며 성취하는 과정이다. 몸은 기술과 함께 일을 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생동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살로 된 삶의 주인공이다. 미래적인 기술은 인간과 삶, 그리고 몸과 함께 협력하며 몸의 생동적 참여를 통한 인간 삶의 성취가 가능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결국 미래를 향한 기술 발전의 최우선 목표는 인간에게 몸과 함께 삶의 성취를 제공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기술의 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