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송년 행사로 바쁜 연말,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2년을 보내며 미래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실 세계 각국의 기업과 정부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연구에 엄청난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그것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미래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를 그리는 여러 가지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며 또 가장 영향력이 큰 미래비전이 있다. 그것은 테크노퓨처리즘(기술중심적 미래주의)이다. 테크노퓨처리즘은 문자 그대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첨단기술의 내적 논리를 파악하여 그로부터 미래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테크노퓨처리즘이 인류의 미래전망을 장악하며 역사를 이끌어 가는 거대담론으로 본격화된 것은 언제인가. 아마도 2002년부터였을 것이다. 이 2002년은 미국 과학재단에서 인간 성능 증강을 목적으로 한 보고서가 출간된 해이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서 융합으로 오역된 컨버전스가 미래기술의 패러다임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른바 NBIC, 즉 나노, 바이오, 인포, 그리고 인지의 기술적 컨버전스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NBIC 컨버전스는 단순한 첨단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소위 트랜스휴머니즘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의 운명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구글이 지원하는 싱귤라리티 대학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체 트랜스휴머니즘의 내용은 무엇인가. 트랜스휴머니즘은 첨단 기술을 통해 성능이 완전히 개조된 새로운 인간존재, 즉 트랜스휴먼을 생산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비전의 기저에는 임의적 조작을 가해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생학적 인간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비전에 따르면 트랜스 휴먼은 완전히 디지털화되어 그의 디지털 지능을 어느 곳이든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트랜스휴먼은 자연인처럼 육체에 살고 죽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이란 운명도 없다. 결국 기술주의적 미래주의에 따르면 자연적 인간은 슈퍼맨적 성능과 초월적 지능, 그리고 영생을 누리는 트랜스휴먼에 의해 대체되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처럼 미래가 상상을 초월하는 성능의 트랜스 휴먼에 의해 고도 생산적 경제를 구가하며 죽음이 없는 유토피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최근 트랜스휴머니즘에 주도되는 미래 전망을 반성하는 인문학적 미래 비젼이 서서히 출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네오휴머니즘이다. 네오휴머니즘은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 할 수 없는 인간적 부분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철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네오휴머니즘은 인간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인간의 능력을 절대 증강시키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을 거스른다.네오휴머니즘은 세계와 존재를 인간의 이성에 의해 꿰뚫어 볼 수 있는 균일한 법칙들의 총체로 보려는 논리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를 늘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는 창조적 공간으로 존중한다. 그리고 인간의 합리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취급되던 예술적 몰입, 죽음에의 불안 등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인간성의 본질로 이해한다.네오휴머니즘의 핵심은 결국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의 유한성에서 진리를 향한 인간의 위대성을 발견하는 데 있다.
과연 미래로 인도하는 역사의 행로는 무엇일까. 트랜스 휴머니즘일까. 아니면 네오휴머니즘일까. 여기서 그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아이콘 잡스 말을 인용해 보고 싶다. 그의 말은 미래를 향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암시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 `죽음'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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