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gnews.naver.net/image/025/2015/10/22/htm_2015102204338269731_99_20151022060050.jpg?type=w540)
저도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건에서 갑작스러운 흡수통일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재정이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급진통일을 했던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지금까지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이전지출은 3000조원에 육박합니다. 이것도 서독과 동독의 인구 비율이 4대 1, 동독 근로자의 생산성이 서독의 30%일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인구 비율은 2대 1이며 북한의 일인당 소득은 남한의 3%가 채 되지 않습니다. 간단한 산술로 보더라도 급진통일이 우리 재정에 미칠 충격은 독일의 2.7배에 달합니다. 단기적으로는 통일비용이 편익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독일 통일 비용의 60%는 동독 주민에 대한 복지 지출이었습니다. 이 비용은 회수될 자금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 유치를 통해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서독 주민이 세금을 더 내야 했습니다. 북한의 토지나 지하자원을 매각해 통일 비용을 충당하자는 제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 초기에 이같이 중요한 자산을 매각하면 국내외 자본가에게 헐값으로 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의 반발로 남북 갈등이 심해질 수 있고 바람직한 국토개발 계획과 산업정책을 펴기 어려워 통일 경제가 처음부터 왜곡될 것입니다.
![](http://imgnews.naver.net/image/025/2015/10/22/htm_2015102204342752685_99_20151022060050.jpg?type=w540)
더 심각한 문제는 통일 한국의 정치제도입니다. 급진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은 우리 헌법에 따라 투표권을 가지겠지요. 서울대 이석배·최승주, 서강대 이정민 교수와 제가 탈북민을 대상으로 경제학 실험을 한 결과 탈북민과 남한 주민의 사회 규범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참여자에게 일정 금액을 드리고 이 돈을 혼자 다 가지거나 익명의 상대방과 원하는 만큼 나눌 수 있다고 했을 때 탈북민은 자기 돈의 거의 절반을 상대방에게 주는 반면 남한 대학생들은 20% 정도만 주었습니다. 남한 학생의 행동은 다른 나라의 실험 결과와 유사하지만, 탈북민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지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한에 입국한 지 5년이 지났고 남한 대학에 재학 중인 탈북 청년들도 이 성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등지향적인 사회 규범을 가진 북한 주민은 통일이 되면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와 정당에 표를 던질 것입니다. 남한의 표가 보수와 진보로 반반씩 나누어진다면 북한 주민의 표가 몰리는 방향에 따라 통일 한국의 정치 레짐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인구 비율상 독일은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급진통일이 될 경우에 상당 기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고 의석 비율도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현 여당이 상대적으로 급진통일을 선호하는 반면 오히려 이득을 볼 야당은 점진적 통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통일 직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복지와 분배를 바겐세일할 수 있는 정치인의 순발력을 제가 과소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세종시로 행정기관을 옮기는 결정을 보면 선생님 말씀대로 표를 위해서라면 정치인은 무엇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의 남한 이주를 막고 일정 기간 북한 지역을 남한과 분리시킨다면 이상의 문제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거주한다는 조건으로 제공하는 인센티브만으로는 대량 이주를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강제적으로 이주를 막는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통일 자체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사람의 마음과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통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급진통일을 대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 수는 없습니다. 통일이 평화적,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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