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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불쑥 꺼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그년’ 발언도 지난 대선을 앞둔 시점에 나왔다. 비록 직접화법의 형식을 썼지만 박 대통령이 그런 어휘를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절제된 언행은 박 대통령의 장점 중 하나다. 지금까지 들어본 그의 가장 격한 표현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이 후보를 뽑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했던 정도다.
그런 박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발언한 건 3년 전 이 원내대표의 트위터 막말로 받은 상처가 깊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폭언 수위는 막말의 대명사로 간주해온 북한을 능가하는 경우도 잦다. 가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아프리카 밀림의 잔나비(원숭이)’라고 한 북한 관영통신 보도는 지난 총선 때 공개된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풀어서 라이스(미 국무장관)를 강간해야 한다”는 발언에 비하면 유머 수준이다. 이젠 판사·교사에 대기업 오너들까지 욕설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막말의 주산지는 국회다.
정치권에서 막말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본다. 소설가 막심 고리키는 “막말의 최대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역설했지만 이 땅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완연하다. 당장 이 원내대표만 해도 ‘그년’ 발언이 나온 지 불과 3년도 안 돼 야당은 그를 원내 사령탑으로 뽑지 않았는가. 여권도 마찬가지다. 대선 때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 인사들을 “정치적 창녀”라고 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중히 발탁했다. 그러니 막말 이력을 오히려 훈장처럼 여기는 게 이상하지 않다.
최근 물의를 빚은 사례 중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청주지검장을 지냈던 인물이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검찰에 있을 때 그는 “점잖은 검사”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왜 막말 대열에 합류했을까.
지난번 총선 직전 박 대통령은 막말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생각하자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공천에서 막말 인사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해 왔다.
여야가 내년 총선에서 이 약속을 지키고 청와대가 문제 인사 배제의 원칙을 고수한다면 정말 병신년이 막말 추방의 원년이 될 수 있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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