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퀴즈에서 보육원에서 자라 홀로서기를 한 청년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청년이 처음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물건이 반찬을 담고 있는 락앤락 통이었다고 한다.
청년은 늘 보육원에서 식판에 배식을 받아 식사를 했기 때문에 락앤락 반찬통을 볼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락앤락 반찬통을 보며 '이런 게 집이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말하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든 반찬이 담긴 통에서 처음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은 '운동화'다.
설이 되어 본가에 내려가 가게일을 돕는데 발이 너무 차가왔다. 집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발이 시리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 현관을 보니 따뜻한 털 운동화 한켤레가 놓여있었다.
대학생이던 내가 신고 다니다가 본가에 놓고간 것이었다.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에 신던 신발이 이 집에는 아직도 있구나.' 싶었다.
나의 추억을 엄마가 대신 간직해준 것이었다.
정작 서울에 있는 자취집에는 추억의 물건이라는 게 거의 없다.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니기도 했고, 월급만 들어오면 뭘 그렇게 신나게 사들였는지
지금 주위를 휙 둘러봐도 가장 오래된 물건이 2~3년 정도 된 것이지 싶다.
전에 쓰던 것들에 비해 세련되고 좋은 물건들이 많지만 늘 새로운 것이 사고 싶다.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인 걸까.
엄마 집의 현관에서 몇 년만에 그 운동화를 보니 마음 속에서 뭔가가 살짝 봉인 해제된 느낌이었다.
돈이 없던 학생 때라 이 보세 운동화도 며칠 고민하면서 샀다.
그떄는 그런 현실이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벗어나고 싶었는데,
운동화를 다시 보니 그때 그 어리고 질풍노도의 시절이 귀엽게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난 왜 그때 이런 촌스러운 디자인의 운동화 때문에 끙끙 앓은 건지.
엄마는 이 운동화를 왜 이렇게 오래 가지고 있었던 걸까.
물건은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좋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