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벽면이 통유리로 된 건물이 서울에서만 해도 이곳 저곳 정말 많다.
사실 우리 회사 건물도 통유리 건물이고, 나는 그 건물의 꼭대기 창가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이 더 많다.
단열이 잘 안 되어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창밖 풍경은 블라인드 덕분에 볼 틈이 없고,
2~3시경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일을 하는데 눈이 막 부시다.
이런 단점들 덕분에 통유리 건물은 누구를 위해 지은 건물인가, 의구심이 가던 차에
통유리 건물의 효시격의 건물이라는 '메종 드 베르(La Maison de Verre)'에 관한 글을 책에서 읽게 됐다.
p131
"메종 드 베르에서 가장 눈에 띄고 아름다운 부분은 건물 정면을 이루는 유리벽이다. 격자로 짠 검정 강철프레임에 반투명 사각 유리블록을 끼워 만든 유리벽이 3층까지 뻗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 종이병풍을 떠오르게 한다. 이 유리벽으로 햇빛은 쏟아져 들어오지만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다. 복층 거실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내부도 유리벽 못지 않게 미래적이다."
아래는 메종 드 베르의 외관.
이집은 외관만 현대적인 집이 아니라고 한다.
집 안 어디에서건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자동 버튼, 엘리베이터, 중앙 집중식 난방, 공기 여과 시스템, 금속과 나무를 이용한 수납장과 붙박이 가구, 유리 벽을 이용한 공간 분할 등 193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특히 건축주인 달사스 부부를 위해 샤로는 그릇을 수납하기에 좋은 기능성 붙박이장, 빨래 건조대가 숨어 있는 벽체, 빗자루와 청소 도구를 보관하는 둥근 금속 수납장, 문을 닫으면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이동식 벽체를 단 사무실 등 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가득한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 건축물은 샤로의 첫 작품이자, 유일하게 남은 대표작이다.
메종 드 베르의 건축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근근하게 버티며 살았고,
그가 지은 다른 건축물은 다 철거되고 남아있는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샤로가 메종 드 베르를 지으며 확고한 물음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업에 어떠한 가치를, 얼마만 큼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것이냐다.
"가구의 실제작자와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시공자의 독창성이 존중되고 장려돼야 한다.
설계자나 기획자는 꿈도 못 꿀 아이디어들이 장인의 머리에서 나오곤 한다."
샤로가 남긴 말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많은 때다.
샤로의 이야기를 보며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