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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기사)

[뉴스위크] NASA가 ‘마션’에 ‘올인’한 이유

NASA가 ‘마션’에 ‘올인’한 이유 

리들리 스콧 감독 신작 영화의 성패에 우주탐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GOGO LIDZ NEWSWEEK 기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작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 역을 맡은 맷 데이먼. 화성에 홀로 남아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 우주인 이야기다.
8개월 전 나는 부츠 신은 발로 4000t의 오렌지 색깔 흙을 걷어차고 있었다.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렸다. 커다란 레고 모양의 차량들이 뒤뚱거렸다. 조명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보다 더 환하게 번쩍거렸다. ‘버닝 맨’(네바다주의 대형 목각인형 태우기) 축제 현장은 아니었다. 내가 있는 곳은 화성이었다.

오른쪽의 정체 모를 검정 텐트 속에서 영국 요크셔 억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을 뒤로 기울여!” 흙 먼지 속의 사람들이 힘들게 몸을 움직였다. “기울이는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아. 너무 급해.”

이들의 화성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먼지 덮인 촬영 스튜디오 안에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었다.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로 유명한 영국인 감독이다. 내 부츠 밑의 오렌지색 흙은 그의 최신작 ‘마션(The Martian)’의 세트였다. 지난 10월 8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다.

20~3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로빈슨 크루소 스타일의 서사적인 3D 생존기다. AOL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앤디 위어의 온라인 연재물을 2011년 엮어낸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마크 와트니(데이먼 분)는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인이다. 모래폭풍에 날아온 통신 안테나가 몸에 박히며 나가 떨어진다. 동료들은 그가 숨졌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지구로 귀환한다. 그에게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통신할 방법도 없고, 다음 번 화성 탐사선은 4년 뒤에나 도착한다. 10개월치의 보급품만으로 화성의 혹독한 환경에서 견뎌내야 한다. 와트니는 자신의 과학 노하우를 총동원해 식량을 재배하고 물을 확보하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NASA에 알린다. 다재다능한 기계공학자인 그는 자신의 소변을 이용해 로켓 연료를 만들어낸다.

원작 소설의 최고 열성 팬은 NASA일지 모른다. NASA는 이 영화를 “대중의 관심을 우주여행으로 다시 되돌릴 기회”로 본다고 위어가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에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5월 이렇게 평했다. “앤디 위어와 그의 저서 ‘마션’이 NASA와 우주 프로그램 전체를 살렸을 수도 있다.” NASA가 화성 탐사예산 확보에 겪는 어려움과 그 소설로 얻은 막대한 홍보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NASA는 그 소설에 기초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우주탐사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반 세기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하 2001)’가 그랬듯이 말이다.

NASA는 우주개발 경쟁 시대인 1959~1974년 사이 15년 동안 머큐리·제미니·아폴로·스카이랩 등 30대의 유인 우주선을 발사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새로운 유인 우주탐사가 별로 없었다. 대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초점을 맞췄다. 1500억 달러 규모의 국제 공동 우주실험실이다. 근래 들어 과학 측면에서 최대의 공로를 꼽으라면 지구 상공 320㎞ 궤도를 순환하는 동안 우주인들이 상추를 먹을 수 있게 한 일 정도 아닐까 싶다.

2013년 보잉과 비영리단체 ‘화성 탐사(Explore Mars)’의 의뢰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NASA의 예산을 2배로 올려 빠른 시일 내에 인간을 화성에 올려 보내야 한다는 미국인이 75%에 달했다. NASA는 2030년대까지는 인간의 화성 정복을 희망한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16 회계연도 NASA 예산안을 상원이 승인해준다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5년 예산에서 5억 달러 늘어난 185억 달러다.

지난 9월 미국 내셔널 프레스 클럽 조찬회에 참석한 NASA의 퇴역 우주인 테리 버츠와 마크 켈리는 미국인이 화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NASA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 정복은 “로켓 공학보다는 정치학에 더 가까운 문제”라고 버츠 우주인이 말했다. 1989년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은 NASA의 장기 목표로 화성 탐사를 제안했다. 그가 주창한 우주 탐사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훗날 휴지조각이 됐다(차기 정부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화성 유인탐사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대신 로봇 탐사선을 선호했다.)

디즈니의 상상공학 책임자(Imagineering chief) 출신인 브랜 페런은 미국 정부 과학기술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NASA가 “현재로선 다소 방향성을 상실한 모습이다. 쇄신과 구조개편으로 새롭게 태어나 탐사의 비전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전과 열정이 필요하다. 영화가 그 역할을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의 화성 표류기 영화가 정말로 인간의 화성 착륙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마션’의 작가인 위어는 비행 공포증이 있다. 우주탐사에 관한 지혜의 원천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캐릭터다. 소설은 사실상 재미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369쪽짜리 수학 문제집이다. 그가 웹사이트에 올린 연재물이 출발점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작가는 이 책을 ‘기술 전문가 대상의 기술 관련서’로 구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마존 전자서적 분야의 히트작이 됐다. 랜덤 하우스 출판사에서 그를 찾아왔고 할리우드가 뒤를 이었다. 드류 고다드가 각색을 맡았다. 지난 9월 중순까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의 대형 페이퍼백 픽션 부문에서 45주 연속 1위를 지켰다. 줄거리의 바탕을 이루는 과학이 놀라우리만치 정확하다. 하지만 위어에 따르면 주로 구글에서 리서치했다고 한다.

페런 전 자문위원은 ‘정확한 감수성’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우주영화가 최고라고 평한다. 위어는 큐브릭 감독의 ‘2001’에서 처음 영감을 얻었다. 수많은 우주인·엔지니어·과학자들이 관련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로 거론하는 1968년 작 공상과학 클래식이다. 큐브릭을 비롯한 제작진은 훗날 실제로 구현된 미래상 중 다수를 정확히 예견했다. 큐브릭 팀이 21세기의 우주탐사를 상상할 때 미래학자, 과학자 나아가 IBM(당시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의 도움을 받아 폭넓게 리서치했기 때문이라고 NASA의 영화·TV 협력 담당자 버트 울리크는 설명했다.

“특히 영화 속의 공상과학은 현실 과학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울리크 협력팀장은 말한다. 영화 ‘2001’ 속 부드러운 목소리의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은 어렵지 않게 아이폰의 시리(음성인식 시스템)를 대신할 수 있다. 목성 탐사비행에서 사용되는 태블릿은 아이패드와 깜짝 놀랄 만큼 비슷하다. 비디오폰은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예고했다. 우주 헬멧, 우주복, 우주 정거장의 디자인도 경이로운 선견지명을 보여줬다.

NASA와 자유롭게 아이디어 교환


▎영화 ‘마션’ 속의 NASA 본부(왼쪽). 영화에서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대원들이 작업하고 있다.
NASA가 ‘2001’의 기막히게 정확한 미래상에 감탄해 그 뒤로 할리우드와 손잡게 됐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협력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그래비티’ 촬영 때는 우주인 캐디 콜먼이 ISS에서 배우 샌드라 블록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배역에 관해 도움말을 줬다. ‘투모로우랜드’에선 NASA가 브래드 버드 감독에게 조언했다고 울리크 협력팀장이 말했다. 1960년대 NASA 문화에 근거해 그 복고풍 미래주의적(retro-futuristic, 과거에 상상한 미래상의 묘사)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적 배경’ 지식을 제공했다. ‘트랜스포머 3’ 때는 제작진이 사실상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했다. 주로 1998년작 ‘아마겟돈’ 촬영 때 마이클 베이 감독이 NASA와 협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NASA 관계자들은 다른 어느 할리우드 제휴 프로젝트보다도 ‘마션’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NASA의 많은 부서 직원들이 시나리오 구성부터 본 촬영(principal photography)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많은 조언을 했다. 디자인과 기술적 세부사항에 관해 NASA의 협력이 다른 영화들보다 “더 집중적이었다”고 울리크 협력팀장이 말했다.

NASA는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하다. 제작자 마크 허팸은 첫 제작 회의 중 스콧 감독과 함께 NASA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들이 원작 소설에 관해 알고 있었고 서로 문호를 개방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자며 적극적으로 호응해 대단히 기뻤다”고 돌이켰다.

협력관계는 울리크 협력팀장에서 시작됐지만 곧 가지를 뻗어나갔다. 시나리오 구성에서 기술적 조언을 제공한 NASA 관계자로는 제임스 그린을 꼽을 수 있다. 미래 화성 탐사비행 계획수립을 포함해 모든 로봇 우주비행에 관해 오바마 정부나 의회와 협력하는 NASA 국장이다. NASA 중역인 데이브 래버리는 큐리오서티, 오퍼튜니티 같은 화성 탐사선 임무뿐 아니라 미래의 무인 우주비행 ‘화성 2020’을 맡고 있다. 유럽우주기구(ESA)의 과학자인 루디 슈미트는 촬영 현장 기술 고문으로 고용됐다.

결과적으로 제작의 전 과정에 NASA의 지문이 묻어 있다. 시나리오 작가 고다드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를 방문했다. 캘리포니아공대 소속으로 연방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연구소다. NASA에서 사용할 로봇을 개발한다. NASA는 또한 의상 담당 잰티 예이츠와 워싱턴 DC 소재 스미소니언 협회 큐레이터 간의 미팅도 주선했다. 스미소니언에는 수성 탐사 프로그램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이로운 우주복 컬렉션이 소장돼 있다. ‘마션’에서 NASA 탐사대장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은 우주인 출신 화학자 트레이시 콜드웰 다이슨의 조언을 들었다. 2007년 8월 우주왕복선 엔데버 플라이트 STS-118의 특임 우주인(mission specialist), 2010년 우주정거장에 탑승한 ‘익스피디션 24’ 우주인의 일원이다. NASA 국장 역을 맡은 배우 치웨텔 에조오포는 NASA와 JPL 관계자들에게 물어가며 자신의 배역을 공부했다고 한다.

미술감독 아서 맥스는 휴스턴에 있는 NASA 시설을 폭넓게 둘러봤다. 그뿐 아니라 옛날 수성과 아폴로 우주비행 관제센터와 우주정거장을 모니터하는 현재의 센터도 안내 받았다. 1985년부터 스콧 감독과 함께 일해 온 맥스는 NASA의 가이드가 없었다면 ‘마션’ 세트 제작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NASA 우주인과 행정가들이 스콧 감독, 위어, 데이먼과 함께 코믹-콘 엔터테인먼트 전시회와 JPL 토론회에 참석해 종종 ‘마션’을 NASA의 화성 탐사계획과 비교했다.

영화가 NASA의 현재 목표와 오버랩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데이먼은 최근 NASA 인사이트 착륙선의 실리콘 칩에 이름을 새겨 넣는 행사에 참가 신청을 했다. 착륙선은 앞으로 1년 뒤 화성에 도달한다. NASA와 20세기 폭스 모두 트위터 ID에 #JourneyToMars(화성으로의 여행)라는 해시태그(주제 분류어)를 사용한다. 가공의 탐사를 그린 영화뿐 아니라 현실 속의 잠재적인 화성 탐사를 홍보하려는 목적이다. NASA는 10월 중 화성 유인 탐사의 10개 착륙지점 후보를 선정하는 워크숍을 개최한다. 영화 ‘마션’과 실제 화성 탐사의 진척을 연결시키려는 포석이다.

영화 제작팀은 NASA의 배려로 케이프 캐너버럴에서의 우주선 발사 장면도 촬영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12월 오리온호의 발사였다. 인간을 우주 멀리까지 올려 보내기 위한 우주선이다. 오리온은 화성 여행을 향한 첫걸음으로 홍보돼 왔다.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은 오리온호에 ‘마션’ 기념품을 실어 궤도로 올려 보내기까지 했다. 스콧 감독이 와트니를 묘사한 최초의 스케치다. 그 스케치가 영화 시나리오의 표지를 장식했다. 인터넷에서 가장 사랑 받는 와트니의 명대사가 함께 새겨져 있다(최근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트위터에 올렸다). “과학으로 이 빌어먹을 행성을 빠져나가야겠군.”

과학과 예술이 이뤄낸 최고의 합작품


▎영화 속 와트니의 대사 “과학으로 이 빌어먹을 행성을 빠져나가야겠군”은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트위터에 올려 유명해졌다.
물론 화성에 관한 최고의 영화는 스피리트·큐리오서티·오퍼튜니티 같은 NASA 탐사선들이 촬영했다. 과학과 예술이 이뤄낸 최고의 합작품이다. 화성은 로봇이 감독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그리고 탐사선의 실제 영상이 ‘마션’에 삽입됐다. 아울러 NASA의 상당수 그래픽, 고해상 위성 이미지, 자료 영상이 영화 속 스크린과 모니터에 등장한다.

“우주 탐사에 관한 한 과학과 예술 간에 항상 흥미로운 협업이 이뤄졌다”고 페런 전 자문위원이 말했다. “우주여행이 가능해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밤중에 하늘에 반짝이는 온갖 점들이 무엇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호기심은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다.”

부다페스트 세트 취재 마지막 날 데이먼의 캐릭터가 우주 캡슐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 더 똑똑한 캐릭터의 연기가 재미있다”고 그가 말했다. “나보다 더 빨리 정답을 찾아낸다. 세트 위에서 우주복 차림으로 앉아 ‘나는 화성에서 20분도 버티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NASA는 ‘마션’이 극장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 버텨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GOGO LIDZ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